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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전투복에 숨은 비밀

생나기헌 2022. 4. 8. 08:04

OCP 위장 무늬의 기반이 된 멀티캠 위장 무늬. 조준 방해 효과보다는 피탐지 확률 저하에 더욱 신경을 써서 만들어졌다. ⒸWikipedia

 

미 육군의 현용 전투복인 ACU(Army Combat Uniform, 육군 전투복, 작전형 위장 무늬라는 의미의 Operational Camouflage Pattern의 약자인 ‘OCP’ 또는 ‘스콜피언’으로도 불린다)도 예외는 아니다.

 

우선 이 옷은 찬물로 빨고, 섬유 유연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옷을 쥐어짜거나 비틀어서 물기를 제거해서도 안 되고, 직사일광에 건조해서도 안 된다. 표백제를 써서도 안 된다. 다른 색깔의 옷들과 함께 빨아서도 안 된다. 위장 무늬의 탈색 및 변색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옷의 원단에 인쇄된 위장 무늬는 지난 2002년 크라이 프리시전 사에서 개발한 멀티캠(Multicam) 위장 무늬를 개량한 것이다.

OCP 위장 무늬의 기반이 된 멀티캠 위장 무늬. 조준 방해 효과보다는 피탐지 확률 저하에 더욱 신경을 써서 만들어졌다. ⒸWikipedia

모든 위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신경 써서 만들어지는데, 첫 번째 측면은 피탐지 확률 저하다. 적의 탐지 장비에 발견될 확률 자체를 낮추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은 조준 방해다. 크기와 형태, 진행 방향 등을 왜곡시키면 적이 정확한 조준을 통해 명중탄을 날릴 수 없다.

 

멀티캠 위장 무늬는 이 중 첫 번째 측면에 특히 신경을 써서 만들어졌다. 또한 다양한 환경(특히 온대와 삼림지대)에서도 가장 공약수적인 위장 효과를 얻기 위해, 인간의 인식 능력을 연구해 세심히 설계되었다. 인간의 눈과 두뇌가 형태, 부피, 색채를 인식할 때, 눈이 정보 획득 및 처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적다. 인간의 눈이 제공하지 못하는 나머지 정보는 두뇌에서 추론 작용을 통해 만들어낸다.

 

멀티캠 위장 무늬는 이 점을 이용했다. 관측자의 눈에 가급적 주변 환경의 형상 및 색상과 유사해 보이도록 매우 복잡한 위장 무늬, 그리고 명도, 채도, 색상 차이가 덜 나는 여러 색들을 이용해 설계되었다. 때문에 이런 위장 무늬를 이루는 색상이 빨리 탈색 또는 변색되면 설계 시에 의도한 위장 효과가 안 나오는 것이다.

 

반면 과거의 위장 무늬는 두 번째 측면인 조준 방해 효과에 더 치중하고 있었다. 명도, 채도, 색상 차이가 크게 나는 색들과 비교적 단순한 무늬가 주는 높은 대비 효과에 더 많이 의존했다. 이를 통해 물체의 형태, 부피를 왜곡시키려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예가 한국군 차량에 칠해져 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나뭇가지 모양 무늬다. 이는 물체의 윤곽을 속이기 위한 위장무늬 설계다. 그러나 대비 효과를 높이면 그만큼 적의 눈에 잘 띄는 단점이 있다.

 

ACU에는 방충을 위해 방충제인 페르메트린도 코팅되는데, 앞서 말한 주의 사항을 지켜야 페르메트린의 약효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섬유 유연제는 페르메트린을 파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메트린은 미 환경보호청이 지정한 약한 발암물질이다. 이 처리가 된 피복을 입었을 때 암에 걸릴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다. 때문에 미군에서는 임산부 및 수유부를 위해 페르메트린 처리가 되지 않은 ACU도 지급하고 있다.

 

ACU는 드라이크리닝을 하거나 풀을 먹여서도 안 된다. 드라이크리닝에 쓰이는 화학 약품은 섬유 유연제보다도 페르메트린 파괴 효과가 뛰어나다. 풀을 먹일 때는 열도 가해지는데, 이 열은 ACU에 달려 있는 패치 부착용 벨크로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과거 전투복은 패치를 실로 꿰매서 붙여야 했다. 그러나 ACU는 벨크로를 사용해서 패치를 달기 때문에 패치를 아무리 바꿔도 옷에 손상이 없다. 또한 작전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패치를 바꿔 붙일 수 있다.

 

열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불과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군에도 엄존했던 전투복 다림질 전통이다. 미군은 ACU뿐만 아니라 그 이전 1980년대의 우드랜드 전투복에서부터 적외선 야간 투시 장비로부터의 피탐 확률을 낮추기 위해 아예 색마다 적외선 반사율이 다 다른 염료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옷을 다림질해서 줄을 잡으면 이러한 염료의 성능이 약화될 뿐 아니라, 다림줄을 따라 착용자의 체온이 모여서 적외선 야간 투시 장비에 더 잘 잡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미군은 우드랜드 전투복을 채용하면서부터 전투복 다림질도 금지해 왔다.

 

또한 ACU에는 석유계 오염 제거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ACU도 전투복이라 화재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하는 방염 화학물질 코팅이 되어 있는데, 석유계 오염 제거제는 이러한 방염 화학물질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미군에서는 석유계 대신 효소계 오염 제거제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