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살아가는 이야기

카톡만 볼 줄 알았지? 내비게이션도 다 봤어

생나기헌 2014. 10. 20. 13:20


당신이 스마트폰에 내비게이션 앱을 깔았고, 지난 4월16일~7월17일 서울 서초구 언남초등학교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길 안내를 받았다면, 당신의 1~3개월치 위치정보가 통째로 검찰과 경찰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카카오톡 사찰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시사IN>은 검찰과 경찰이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을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 검증영장을 발부받아 광범위한 사용자 정보를 요구한 것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내사 대상자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의 위치정보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IN>은 유병언 일가 수사와 관련한 압수수색검증영장 두 가지를 확보했다. 지난 7월3일 서울중앙지법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의 대상은 T맵을 운영하는 SK플래닛, 올레맵과 올레내비를 운영하는 KT, U+Navi를 서비스하는 LG U+ 등 국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6개 업체였다(<사진 1>).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국내 모든 업체가 대상이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검찰 지휘를 받아, 당시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의 도피를 도울 것으로 예상되는 내사 대상자와 이들 가운데 4명 이상과 통화한 430명 명단을 압수수색 검증 대상 업체에 제시했다. 그러고는 이들이 내비게이션 서비스 이용을 위해 회원 가입을 했는지를 알기 위해 개인정보 일체를 요구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압수수색 검증 대상일 수 있다.

문제는 다음 항목이다. 2014년 4월19일~5월26일 출발지나 목적지를 전남 순천에 위치한 ‘송치재휴게소’ ‘송치골가든’ ‘송치골’로 검색한 모든 사용자의 자료를 요청했다. 구원파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반인이 이 세 항목 가운데 하나만 검색해도 압수수색 검증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게다가 430명 내사 대상자뿐 아니라 송치재휴게소, 송치골가든, 송치골을 검색한 일반 사용자의 약 3개월치(4월19일~7월3일) 위치정보 모두를 압수수색 검증 대상에 포함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업체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영장 내용대로라면 ㄱ이라는 이용자가 여행을 하다 송치재휴게소를 검색했다면, 그 사람의 3개월 정보도 찾아내야 했다. 작업 분량이 어마어마해서 정말 법원이 내준 영장이 맞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7월18일 다시 2차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사진 2>). 1차 압수수색 결과 업체로부터 회원 가입이 되었다고 확인된 대상자 182명과 추가 대상자로 특정된 89명까지 모두 271명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제시했다. 이번에는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기간을 2014년 3월1일~7월17일로 확대했다. 이번에도 일반 이용자 가운데 유병언이 잠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송치재휴게소’ ‘야망연수원’을 목적지로 검색한 사용자 정보를 요구했다. 또 4월16일~7월17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에 위치한 언남초등학교를 목적지로 검색한 사용자를 전부 찾아달라고 했다. 당시 도피 중이던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의 주거지가 언남초등학교 주변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송치재휴게소, 야망연수원뿐 아니라 언남초등학교를 검색한 일반 사용자의 3개월치(4월1일~7월17일) 전체 위치정보를 요구했다. 만일 언남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나 교사가 T맵이나 올레내비를 이용해 목적지로 언남초등학교를 설정했다면, 이들도 압수수색 대상이 되었고, 이들의 3개월치 위치정보가 모두 압수수색 대상이 된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이렇게 광범위한 자료 요청을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와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유병언 체포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금 유병언 검거를 위해 검·경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6월10일 국무회의).” 박 대통령이 잇달아 유병언 검거를 지시한 뒤 해군까지 동원되면서 수사기관은 저인망식 마구잡이 수사를 편 것이다.

이번에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 대상이 된 실시간 길거리 안내 앱 서비스 1위 업체는 SKT의 T맵이다. 회원 수만 무려 1800만명에 이른다. KT 올레내비가 1300만명, LG U+ 내비가 700만명이다. 이들 세 업체는 자사 안드로이드 폰을 팔 때, 자사 내비게이션 서비스 앱을 기본으로 탑재한다. 삭제도 안 된다. 그래서 이용자가 많다.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 검증 영장은 수백에서 수천만명에 달하는 전체 내비게이션 앱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셈이다.

검경은 SK, KT, LG U+ 등 국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6개 업체에 사용자 위치 정보를 받아냈다.

경찰은 통상 범죄수사에 필요하다며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에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을 보낸다.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은 압수수색 영장보다 법원의 발부 조건이 덜 엄격하다. 주로 통화 기록 및 인터넷 로그 기록 등이 포함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법원에 낸 통신사실 요청 건수가 이명박 정부 시절 연간 6만3000건~6만7000건에서 박근혜 정부 첫해인 지난해에는 7만1000건으로 늘었다. 경찰은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한다. 하지만 위치정보는 이런 통신사실 확인사실 요청으로 파악할 수 없다. 법원의 영장 대상이다. 그만큼 위치정보 서비스가 유출될 경우 개인정보 침해가 크기 때문이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근거하기는 했지만, 이번에 드러난 위치정보 서비스에 대한 압수수색은 ‘과잉 압수수색’과 ‘탐색적 압수수색’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이번에 발부된 영장을 보면, 경찰은 영장을 받기 위해 SK플래닛 담당자의 진술을 인용하기도 했다. SK플래닛 담당자는 “휴대전화만으로 T맵 사용 이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관 기간은 접속 기록은 1년, 키워드 검색은 6개월, 주행이력은 30일 정도다”라고 경찰에 말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이번 영장의 경우 범위가 너무 넓고 악용될 소지도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특정 위치 주변에 숙박업소가 있을 경우 숙박업소에 동시에 들른 이용자 정보를 검찰과 경찰이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탐색적 압수수색의 남발은 별건 수사를 용이하게 한다. 그래서 포괄적·탐색적 압수수색을 금지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치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치정보가 보호되어야 할 개인정보라는 의미다. 위치정보 추적은 범죄 혐의가 있는 피내사자에 국한해야 한다. 이번처럼 광범위하게 정보를 요구하고 이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 불법의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2차 압수수색 영장은 기간을 늘려 이전보다 광범위한 정보를 요구했다.

검찰과 경찰이 이처럼 내비게이션 앱 회사의 정보를 수사에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 때도 국정원과 검찰은 내비게이션 앱 서비스 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법원에서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RO 조직원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이용자들이 본인의 위치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제9조의3 압수·수색·검증의 집행에 관한 통지)에 따르면 ‘검사는 공소를 제기하거나 공소의 제기 또는 입건을 하지 아니하는 처분(기소중지 결정을 제외한다)을 한 때에는 그 처분을 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수사 대상이 된 가입자에게 압수·수색·검증을 집행한 사실을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다. 문구만 보면 위치정보 조회를 당한 대상자는 통보를 받아야 하지만, 사각지대가 있다. 기소와 불기소 처분 대상자에게만 국한된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서울 종로경찰서로부터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 사실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구속 기소 대상자였다. 그래서 기소한 뒤 통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압수수색 대상으로 분류되어 위치정보 서비스가 조회된 이용자들은 애초부터 기소나 불기소 처분 대상이 아니어서 압수수색 사실에 대한 통보 대상도 아니다. 박경신 교수는 “언남초등학교를 검색한 일반 사용자는 현행법에 따르면 통지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부터 기소나 불기소 처분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 입법례처럼 기소·불기소 처분과 무관하게 압수수색 검증 대상자 전원에 대해 압수수색 사실이 통보되도록 관련법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SK, KT, LG U+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는 내비게이션 서비스 앱이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